단문

오랜만에

도영 태용




  

 

오 년째 알고 지내는 동생 도영이는 기민하고 빠릿한데 의외로 낡아 빠진 구석이 있다. 세계의 끝과 끝에서 실시간으로 전자 메시지를 보내는 시대에 굳이 이렇게 아날로그 편지를 보내온다. 미국에서 매달 오는 이 편지들은 통상 몇 주의 딜레이를 두고 배달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뒤늦게 연결되는 셈이다. 

 

어제, 집에서 산세베리아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가 우체부의 방문을 통해 편지를 받았다. 도영이로부터 온 스물 다섯 번째 편지다.

 

 

태용이 형에게.

 

안녕. 이태용. 오늘도 쓴다. 편지. 형 지금 표정 알 거 같아. “아, 얘 또 이런 거 보냈네. 그냥 카톡하지. 이메일을 쓰든가. 귀찮게 뭐하러 이래?” 분명 그렇겠지 뭐.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내가 이거 보내는 데 얼마나 수고를 들이는지 알아? 편지지 고르고, 펜도 고르고, 무슨 말 쓸지 열심히 생각하고, 다 쓰면 한참 떨어진 우체국까지 가서 부치고. 완전 사서 고생이지. 우체국 가면 직원이 맨날 괴짜 취급 한다니까. 요새 이런 종이 편지 부치는 사람이 어딨냬. 그 직원도 참 한결같더라. 이 년이나 봤으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그래.

 

남의 나라에서 우편 보내는 거, 처음엔 되게 어색했는데 이젠 그냥 일상 같아. 사람마다 좀 특이한 취미 하나씩 있잖아? 나한텐 이게 취미야. 그러니까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지. 좀 이상한 취미긴 해. 근데 뭐 어쩔 수 없었어. 사실 그동안 되게 외로웠단 말야. 형한테는 별로 말 안 했지만. 여긴 워낙 한인들이 많긴 한데, 그래도 외국에서 혼자 있으려니까 외롭더라. 그럴 때마다 편지 썼어. 펜 사각사각거리는 소리 들으면 마음이 좀 진정된다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게 쓰다 보니까 형한테 벌써 이십 통 넘게 편지를 보냈네. 사실 써 놓고 안 보낸 편지도 많은데 그거 다 보냈다간 요금이 감당 안 될 것 같애. 어차피 이제는 보낼 시간도 없겠지만.

 

형, 내가 전화로 저번에 얘기했지. 나 다음 달에 한국 돌아간다고. 형이 이 편지 받을 때쯤이면 아마 이번 달이겠다. 정확한 날짜 알려줄게. 4월 27일 밤 11시 도착이야. 그때 꼭 마중 나와야 돼. 내가 카톡으로는 언제 비행기라고 얘기 안 했었잖아? 일부러 말 안 했어. 이거 테스트야. 형이 내 편지 잘 읽는지 아닌지. 만약에 그때 마중 안 나와 있으면… 내 편지 안 읽고 버린 걸로 알게. 나 엄청 실망할 거야. 그러니까 꼭 나와. 알겠지. 내가 한번 지켜본다, 이태용. 만약에 제대로 마중 나왔으면? 내가 선물 줄게. 뭔지는 비밀. 그때 와서 봐.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쓸래. 못한 말은 만나서 하지 뭐. 우리 안 본 지 벌써 이 년이나 됐다. 보구 싶넹. 내 사랑  아 씨. 잘못 썼다. 방금 한 말 잘못 쓴 거야, 알겠지.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하여튼 그때 봐, 형. 잘 있어. 빠이. @.@  


편지는 한 장으로 끝났다. 개구진 필적으로, 귀여운 경고를 남긴 채. 손가락 끝으로 글자를 더듬었다. 글자 위로 그어진 선을 따라 훑었다. 글씨는 다정하고 선은 매정하네. 편지를 접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두세 장씩 편지지를 넣어 두툼한 편지 봉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위에 도영이의 마지막 편지를 올려두었다. 4월 27일 오후 11시. 날짜와 시간을 되뇌면서.

 

웃겨, 김도영. 뭐 이런 걸 테스트를 해. 뭐하러. 난 네가 보낸 편지 매일 매일 읽고 또 읽는데.

 

 

 

 

월요일 밤의 인천공항은 한산했다. 나는 이따금 오가는 사람들을 지나쳐 입국장으로 갔다. 유치한 플래카드 같은 걸 들고 요란스럽게 기다려 볼까 하다 그냥 관뒀다. 대신 도영이에게 건넬 외투를 손에 들었다. 

 

도영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온다. 거긴 지금 한국의 초여름 날씨 정도라고 했다. 한국은 뒤늦은 꽃샘추위로 쌀쌀하니 그곳과는 기온의 괴리가 꽤 있겠지. 자기 앞가림은 항상 잘 하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집에 있던 얇은 점퍼를 가져왔다. 한국을 떠나기 전 도영이가 우리 집에 두고 갔던 옷이다. 이거 내가 아끼는 옷이야, 나 오면 꼭 다시 줘야 돼, 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갔었던 옷. 그런 옷을 구태여 벗어 놓고 간 김도영. 그런 말을 구태여 기억하고 있는 나. 우습도록 잘 맞는 사람들.

 

 휑덩그렁한 입국 터미널에는 인파가 적고, 도착 정보 안내판의 스크린만이 파랗게 빛난다. 느릿하게 바뀌는 글자들을 읽었다. OZ203. LAX. 비행기의 정확한 도착 시간은 23시 20분이다. 도영이를 만나는 건 거의 자정 쯤이 아닐까. 한 시간이 남았다.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입국 게이트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콜라 캔을 땄다. 과자 봉지도 뜯었다. 도영이가 봤으면 아마 쉼 없이 잔소리를 해댔겠지. 도영이는 퍽 다정다감하고 그만큼 잔소리도 곧잘 하는 성격이다. 그런 애가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형은 진짜 손이 많이 가. 그 말대로였다. 나는 도영이보다 한 살 위지만 늘 도영이의 보살핌을 받았다. 먹고 입고 자는 것 전반에 모두.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칠칠맞은 타입이 아닌데도 그랬다. 내가 영 못 미덥게 생긴 얼굴인가? 아니면 챙겨주는 게 그냥 김도영의 습관인 걸까? 

 

원인은 모호했으나 여하간 우리의 관계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잔소리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웃고 떠들고. 그러다가 도영이가 해외 파견을 나가면서 일시적으로 애틋한 단절 상태가 됐었는데. 이 년이 지나 김도영이 돌아온다. 그럼 이제 우리가 으레 함께 하던 순간들로 회귀하는 건가. 우리는 다시 아옹다옹하는 자잘한 사이로 돌아가려나. 글쎄,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쁘지는 않은… 밍밍한 맛이 나는 말이다.

 

기다리는 동안 벤치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면서 아삭아삭 감자칩을 씹었다. 즐거우면서도 지루하네, 라고 생각하기를 삼십 여 분. 그때 전화가 왔다. 도영이다. 뭐야, 도착했나? 어떻게 이렇게 바로 전화를? 사실 그런 의문은 금방 사그라들고 대신 다른 생각이 났다.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전화한 사람이 나구나. 손끝이 간질거렸다. 냉큼 전화 버튼을 눌렀다.

 

“김도영!”

[형! 어디야?]

“나?”

 

귀국했다는 말은 쏙 빼고 대뜸 위치부터 묻는 걸 보니 이것도 테스트의 일환인 모양이지. 왠지 골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 집이지.”

[집이라고?]

 

활달하던 목소리가 훌쩍 가라앉는 것이 귀에 선연하다. 웃음을 겨우 참고 짐짓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왜?”

[아니야. 그냥.]

“아, 너 한국 오는 날인가 오늘?”

[어엉.]

“얘기를 하지 임마. 오는 줄도 몰랐네.”

[했는데.]

“니가 이번 주라고만 했잖아.”

[……뭐 그래, 알았어. 하여튼 나 오늘 한국 왔고, 이제 공항 내렸으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뚝. 전화가 끊어졌다. 눌러 뒀던 웃음이 뒤늦게 터지고 말았다. 아, 김도영, 전화를 무슨 토라진 토끼처럼 끊냐. 하는 짓 참 뻔해. 참 귀여워. 그치만 날 보고 놀라는 토끼는 아마 더 귀여울 거야.

 

 

 

 

게이트 밖으로 입국자들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나오는 이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을 찾았다. 찾는 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파란 체크무늬 셔츠를 걸치고, 얇은 테 안경을 쓰고, 산더미 같은 짐을 질질 끌고 있는 사람. 우리 도영이. 나를 기다리게 만든 김도영. 서러운 반가움이 왈칵 치밀었다. 나를 못 보고 초점 흐린 눈으로 걸어가기에, 내가 손을 팔락팔락 흔들며 외쳤다. 김도영!

 

“어?”

 

내 예상대로, 도영이는 놀라는 토끼가 되어 나를 본다. 귀신이라도 목격한 듯 어안이 벙벙한 얼굴. 그러더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에게 오도도 걸어 왔다.

 

“뭐야! 왔잖아 이태용.”

“니가 오라며.”

 

아니, 그렇긴 한데……. 말끝을 흐리더니 그냥 객쩍게 웃고 만다. 웃음 소리에 허탈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이 년 만에 돌아온 김도영은 삶의 터전을 옮겨 온 철새 같았다. 양손엔 온갖 짐꾸러미들이 한가득이다. 참 많은 걸 들고 다니는 철새네. 손짐을 받아들고 도영이를 한가한 벤치로 데려갔다. 가져온 점퍼도 건네줬다. 어, 이거 잘 가지고 있었네. 도영이는 씩 웃더니 금방 점퍼를 걸쳤다. 그리고선 수북한 짐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말을 건네기엔 마음이 여의치 않았다. 도영이를 꼭 안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도영이가 먼저 운을 뗐다.

 

“편지 진짜 읽었어?”

“읽었지 당연히, 그럼 버리냐?”

“아니, 나랑 연락할 땐 편지 얘기 한 마디도 없길래… 답장도 안 하고.”

“진짜로 내가 안 읽는 줄 알았어? 근데도 계속 보낸 거야?”

“아이 그냥, 그냥 심심이한테 보낸다는 느낌으로 썼지.”

“그래서 그렇게 별 말 다 썼구나아.”

 

도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별 말이 뭔데? 나는 킥킥거리며 대꾸했다. 내 사랑. 곧 도영이의 얼굴이 벌게졌다. 아 진짜! 왜 그런 것만 기억하는데! 왜 그런 것만 기억하냐니. 네 편지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이니까 기억하지. 너도 기억하고 있네, 그러니까 내 말 한 마디에 바로 이렇게 반응하는 거 아냐. 그치? 도영이가 나를 째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구 웃었다.

 

그 뒤로도 한참 도영이를 놀리고 나서, 나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선물 뭐야.”

“어?”

“뭐냐고, 선물. 마중 나오면 선물 준다 했잖아.”

“아아, 그거? 별 건 아닌데. 옷이야, 형 저번에 갖고 싶다 했던 거.”

“아 진짜? 구했어?”

“어어. 편집샵 돌아다니면서 구했지.”

“이여얼. 고생 좀 했네.”

“사실 형 안 왔으면 옷 버릴려고 했는데.”

“진심? 야.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

“아니 그냥, 마중도 안 나오는 놈 뭐하러 선물 주나 싶잖아. 나는 기껏 그렇게… 편지도 고이 써서 보냈는데.”

 

어투가 짐짓 가벼웠다. 반면 말끝은 무겁게 떨어졌다. 의아한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그렇게나 진지하게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거야? 내가 편지를 읽을까, 읽지 않을까? 그게 뭐라고, 너는 왜, 그렇게까지? 그리고, 나는 왜…… 범람하는 의문들.

 

그 와중에 도영이가 물었다. 선물 지금 보여 줘? 사실 선물 증정식 따위에 관심은 전혀 가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라고 했다. 도영이는 캐리어를 열고 종이로 포장된 것을 하나 꺼냈다. 종이를 북북 뜯자 무늬가 요란한 티셔츠가 한 벌 나온다. 내가 이런 걸 사 달라 했었나. 건성으로 옷을 몇 번 둘러보다 말았다. 도영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눈치를 살핀다.

 

“반응이 좀 시원찮다?”

“아냐, 좋아. 이쁘네.”

“혹시 이거 별로야? 그새 맘 바꿨어?”

“아니라니까.”

“뭐야, 근데 왜 이렇게 시큰둥해. 기껏 사 왔는데.”

 

시큰둥. 그게 아니라 그냥 지금 괜히 심술이 나서 그런 건데. 별안간 심술이 났고 그걸 토로할 수 없어서 더욱 심술이 돋쳤다.

 

“그냥, 그냥…… 좋긴 한데, 그냥…….”

 

어쩌면 심술도 아닐지 몰라. 심술이라기엔 지나치게 뭉근하고 아찔한 느낌이 들어서. 무언가 왈칵 쏟아 내고픈 욕구가 밀려왔다.

 

“사실 뭐어…… 선물이 뭐가 중요하냐. 니가 온 게 중요하지.”

 

결국 말을 얼기설기 내뱉고 말았다. 내 속내에 담겨 있던 것보다 훨씬 단출하고 서투른 문장으로. 도영이는 내 의중을 알아챘을까? 아마 그러긴 어려울 거였다. 고작 한 마디를 가지고 어떻게. 그러나 어쩌면. 도영이는 눈치가 빠르니까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옆에 앉은 도영이를 힐끗 봤다. 정적인 얼굴이다.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갑자기 낯간지러운 소리 해, 어색하게.”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나 없어서 되게 심심했나 보다.”

“응.”

“왜 심심했어? 할 거 많은데.”

“많긴 한데, 너랑 같이 안 하니까 재미없더라고.”

 

한번 물꼬를 트니 말이 술술 풀렸다. 아, 웃기다. 나 지금 얼토당토않게 김도영 꼬시고 있는 것 같네. 지나치게 정확한 묘사여서 제풀에 웃음이 났다. 도영이는 따라 웃지 않았다. 나는 멋쩍게 화제를 돌렸다.

 

“선물 땡큐.”

“어어. 잘 입어.”

 

무미건조한 말이 금방 떨어진다. 아무래도 화제를 돌릴 기분이 나지 않는다. 나는 다시 키를 잡고, 내가 진정 가고 싶은 곳으로 재차 방향을 돌렸다.

 

“근데, 미안한데. 도영아.”

“어?”

“선물, 이거 말고 딴 거 주면 안 되냐?”

“뭐야, 맘에 안 드는 거 맞았네.”

“어엉. 미안.”

“딴 거 뭐?”

“말해도 돼?”

“해 봐, 들어나 보게. 말한다고 줄지는 모르겠는데.”

 

도영이의 선선한 허락이 떨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 그 순진함에 빌어 마음을 내던지기로 했다.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너의 사랑.”

 

사랑. 그 한 마디에 침묵이 훅 내려앉았다.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도영이가 신경질적인 대꾸를 터뜨렸다. 아, 형 진짜. 그만 좀 해. 인상을 팍 쓴 채로 그렇게 얘기했다. 내가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흠, 아무래도 너무 히죽히죽 웃고 있었던 모양이다.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그러자 도영이의 눈이 내 입술을 훑는다. 다물린 입의 함의를 알아내려는 것처럼.

 

“장난치지 마, 이태용.”

“장난 아닌데.”

 

한 번 더 확고히 말했다. 이제는 내 진심이 전해졌을까? 문득 도영이가 보내오던 편지들을 떠올렸다. 국제 우편은 대륙과 바다를 건너면서 간혹 분실되곤 한다. 나도 도영이의 편지를 몇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다. 잃어버릴지도 모르고 언제 전달될지도 모르는 얄팍한 편지. 그런 편지에 마음을 바싹 말려 뒀었다. 지금처럼 날것으로 들이미는 건 처음이었다. 도영이가 재차 내게 묻는다.

 

“형.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어.”

 

나는 또 다시 대답했다. 그렇다고. 나는 진심이라고. 너는 어때, 라는 되물음을 함축한 채 도영이를 쳐다봤다. 혼란스러워 보였고, 묘하게 흥분한 것도 같았다. 도영이는 제 머리채를 몇 번이고 잡아 뜯다가 마른세수를 연거푸 했다. 

 

“이태용. 갑자기 왜 이래, 당황스럽게.”

“미안. 나도 모르게.”

“진짜 웃긴다. 공항에서 뜬금없이 고백하냐.”

“좀 뜬금없긴 하네.”

“엄청 뜬금없어, 진짜로.”

“싫어?”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걸 알았을까? 도영이는 장난처럼 이 상황을 넘기려 들지 않았다. 자못 심각한 기색으로 말을 고르고 있었다. 마른 입술을 씹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당혹스러운 것이든, 불쾌한 것이든, 어쨌든 거부하는 걸까. 

 

그러나 도영이는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뻣뻣이 굳어 있던 표정이 이내 사르르 풀어진다. 뜨거운 커피에 각설탕이 녹아내리듯이. 도영이가 입을 달싹거린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아니.”

 

숨이 조여들었다. 정말, 싫지 않아? 그러면, 도영아.

 

“줄 수 있어?”

 

내 물음에, 도영이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겸연쩍고 흔쾌한 승낙이었다. 당연하지, 라니.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다니.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달아오른 뺨을 숨기기 위해 도영이의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도영이와 난 지금 같은 뺨을 가지고 있겠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영이가 내게 속삭였다. 내 사랑을 줄게. 익히 들어 온 그 음성이 들어 본 적 없는 말을 자아낸다. 짧은 낱말이 흘러 들어와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도영이의 품에 얼굴을 마구 부볐다. 김도영은 나를 보고, 나는 김도영을 볼 수 없도록.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영이는 내가 모순적인 감정에 빠져 있게 놔 두지 않았다. 길다란 손이 내 팔을 잡고 밀어냈다. 겹쳐 있던 몸이 떨어졌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 닿는다. 역시나 새빨개진 두 볼. 오 년 만에 처음 발견한 김도영의 면모였다. 낯선 얼굴의 도영이가 내게 물었다.

 

“형도 줄 거야?”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멋쩍을 만큼 허겁지겁. 줄게, 내가 줄 수 있는 한 전부 다. 어쩌면 이미 줬었는지도 몰라. 

 

마음을 증명하듯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럴 수 없어 몸을 바싹 붙이기만 했다. 괴롭고 들뜬 신음이 귓가에 웅웅거린다. 도영이의 것이었다. 아, 이태용 진짜…… 미쳤지 너. 나를 부러 힐난하는 그 목소리가 사랑스러워, 나는 결국 참새처럼 입을 쪽 맞추고 말았다.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개의치 않고. 그건 도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내 입술을 좇아와 다시 한번 더 입맞췄다. 수줍게 입이 열리고 혀가 맞닿는다. 발끝이 두둥실 떠다니는 기분으로, 우리는 최초의 키스를 만끽했다.

 

입술을 겨우 떨어뜨리고 나서, 도영이가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형. 다 좋은데, 왜 하필 지금 말해?”

“왜, 지금이 어때서.”

“좀 구색 갖췄을 때 말할 수도 있잖아. 나 비행기 타느라 쩔어 있을 때 말고.”

“괜찮아. 넌 그래도 멋있어.”

“와…… 이태용 돌변한 거 봐. 적응 안 된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지. 돌변한 건 아니지만. 이 년 간 너와 떨어져 있으면서, 아니 어쩌면 우리가 처음 만난 오 년 전부터, 나는 이미 서서히 변하고 있었던 거야.  

 

문득 수많은 궁금증이 일었다. 반대로 넌 어땠는지. 내 마음으로 수십 장의 편지를 날려 보내는 동안 넌 무슨 마음이었는지. 물어 봐도 도영이는 아마 대답하지 않겠지. 부끄럽다면서 말을 피하려 들거나. 혹은 그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 그간의 회포를 풀면서 모든 걸 고백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꿈에 취한 사람들처럼 몽롱하게 일어났다. 도영이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김도영, 너 집도 먼데 여기서 어떻게 갈 거야. 우리 집이 너네 집보다 훨씬 가까운데. 어때.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나는 짓궂은 농담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형,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도영이가 웃는다. 긴 비행의 피로를 말끔히 잊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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